살구꽃
겨우내 뜨겁게 달군 것들이 일제히 터지더니
살구꽃은 잊지 않고 피었다
새들이 앉았다 간 살구나뭇가지에
밤이면 별들이 내려와 하얗게 알을 슬어놓은 꽃잎마다
아침이슬이 맺혔다
우리 집 뒤뜰 살구나무에 살구꽃 피거든 올해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아라
사립문 닫혔다고 오던 길 돌아가지 마라
꽃을 밀어낸 힘으로 살구는 열린다
입안에 침이 고이거든 살구나무 아래로 오거라
울타리 밖에 어둠이 내리면 그때
살구 하나 베어 물어도 말하지 않으리라
가슴에 별이 진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귀띔해 주어라
살구꽃 지기 전에 용서할 일 남았다고
살구꽃을 본 사람이 가장 투명한 사람이다
만나자는 약속해 오는 사람 있거든
살구나무에게 길을 물어라
가지마다 살구꽃 환하게 피워 낼 것이다
가슴속에서 지지 않은
살구꽃은
혼자서 봄을 맞이하고 혼자서 봄을 보낸다
피고 지는 일이 잠깐이라는 것을 아는
봄은
누군가의 손에 쥐여주던 한 알의 풋살구였다
■ 글 = 정성수
• 저서 : 시집 공든 탑, 동시집 첫꽃, 장편동화 폐암 걸린 호랑이 등 90권
• 수상 :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윤동주문학상, 황금펜문학상, 전라북도문화예술창작지원금, 아르코문학창작기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콘텐츠 창작지원금 수혜 등 다수
•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겸임교수, 전주비전대학교운영교수 역임
• 현) 향촌문학회장, 사/미래다문화발전협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이사, 전라매일논설위원, 명예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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