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 피해 아닌 시설 피해에 포커스 맞춰져
시설원예 농작물재해보험이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정으로 농민들의 피해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기상특보 발령 여부와 농업용 시설물의 물리적 피해 여부 등 복잡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어 농민들의 실질적인 지원 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24년 농작물재해보험(원예시설) 약관에 따르면, △구조체, 피복재 등 농업용 시설물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한 경우 △농업용 시설물에 물리적 피해가 없는 자연재해로 작물 피해율이 70% 이상 발생하고 전체 재배를 포기한 경우 △기상청 발령 기상특보에 의해 작물이 피해를 입은 경우에 한해 보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상특보가 발령되지 않은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는 보상 지급 요건이 매우 까다롭고, 기상특보가 발령됐더라도 피해가 특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판단되면 보상이 불가하다. 특히 일조량 부족 등과 같이 최근 빈번히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재해는 기상청 특보 발령 체계에 포함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또한, 농업용 시설물이 물리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경우에도 작물 피해율이 70%를 넘어야 보상이 가능하고, 전체 작물 재배를 포기해야 하는 규정은 농민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안기고 있다.
경북 고령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한 농민은 “농사짓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남은 작물을 살려서 다시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다“며 ”그런데 보험은 100% 다 포기해야만 보상받을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보상 기준의 현실 부적합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작물이 손상돼도 보상은 정식부터 생육 기간까지 발생한 비용만 인정되며, 정상 출하 가능한 상태로 성장했을 때의 소득 손실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성진 창원원예농협 조합장은 “현재 시설 재해보험은 작물이 아닌 시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작물 손상에 대한 보상은 정식일부터 생육 기간까지 발생한 일부 비용만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민들이 작물을 정상적으로 키워 수확 가능한 상태가 되어도 실질적인 경제적 손실을 보상받지 못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농작물 품종별 특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 보상 기준도 한계로 지적된다. 동일 작물 내에서도 품종별로 큰 차이가 발생하지만, 보상금 산정 시 품종별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박과 멜론의 경우, 표준생장일수는 재배 시기와 관계없이 100일로 설정돼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생장일수가 짧아지고 작기별 차이가 커졌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남 함안에서 수박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은 “표준생장일수를 실제 상황에 맞게 조정하고, 작기별로 이원화해야 농가가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