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 품종판별 분자표지 현황과 필요성
품종 판별 분자표지 활용 통해 신품종 보급 및 유통 선진화 한 발 앞서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 이 비밀이 밝혀지는데 필요한 것이 친자확인 검사이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의 엄마와 아빠를 밝히는 데에도 ‘분자표지’라는 기술이 필요하다. ‘분자표지’란 유전 현상의 본질인 DNA의 염기서열 차이를 통해 식물체들의 유전적 차이를 쉽고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표지를 말한다. 쉽게 풀이하면 어린 과일나무 잎사귀 한 장으로 어떤 과일이 달릴지 3~5시간 안에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에 과일이 달리기까지 3~5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혁신적인 기술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지속적인 과수 품종을 개발, 1988년 추석 사과로 알려진 ‘홍로’ 품종을 비롯해 사과 43품종, 배 55품종, 복숭아 24품종, 포도 23품종을 육성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국내외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분별한 외국 품종의 도입과 묘목 업체의 영세성 등으로 품종이 정확하지 않은 묘목이 유통되고 있고, 과수 묘목 생산과 유통 현장에서도 품종 혼입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국내외 묘목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과수 묘목들은 1~2년생의 어린나무로 주로 겨울철에 거래되는데 이때는 과실이 달리지 않고 품종 고유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아 외관상으로는 정확한 품종 구분이 어렵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과수기초기반과에서는 2009년부터 과실의 형태적 특성을 확인하지 않고도, 소량의 잎 조직만으로 쉽고 정확하게 품종을 구분할 수 있는 과수 품종판별 분자표지를 연구하였다. 현재까지 국내 육성 품종뿐만 아니라 도입품종을 포함해서 사과 31품종, 배 39품종, 복숭아 14품종, 포도 33품종을 구분할 수 있는 분자표지를 개발하였고, 특허 등록과 기술이전 등을 통해 과수 품종판별에 활용하고 있다.
과종별로 품종판별 분자표지를 개발한 이후로 사과는 17품종, 배 9품종, 복숭아 11품종, 포도 6품종 등 새로운 43품종이 국내에서 육성되었고, 도입품종의 수도 늘어났다. 또한 사과와 복숭아는 아조변이 품종들이 많이 재배되고 있어 정확한 품종 보급과 인증을 위해 새로운 품종판별 분자표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참고로 아조변이는 식물의 생장점에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 모체와 형질이 다른 가지나 줄기가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과, 복숭아의 아조변이 품종판별을 위한 분자표지 개발 연구는 국립종자원, 대학교 등에서 일부 품종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 성공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사과, 배, 복숭아, 포도에서 국내 최신 육성 품종과 주요 도입 품종을 과종당 48품종씩 선발하여 유전체 염기서열을 확보하였고, 품종 간 차이가 있는 염기서열 부분을 중심으로 품종판별 분자표지를 개발하고 있다. 추석 사과인 ‘홍로’의 아조변이 품종인 ‘자홍’은 수확기가 10일 정도 빨라서 착색이 빨리 되는 품종으로 두 품종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복숭아 ‘유명’의 아조변이 품종인 ‘정만조생’도 숙기가 빠른 극조생종 품종으로 묘목 상태에서는 구분이 어려워 아조변이 품종을 구분하기 위해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과 품종에 따라서 다르게 발현되는 유전자 부분이 있는지 연구 중이다. 이렇게 개발된 품종 판별 분자표지를 활용한다면 과수 신품종 보급과 묘목 유통 선진화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세희<농진청 원예원 과수기초기반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