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있는 당도기
2005-12-06 원예산업신문
과일의 맛은 당도가 결정한다. 물론 사과와 배의 경우 아삭아삭한 식감도 중요하지만 단맛을 느낄 수 없다면 ‘맛있는 과일’이 될 수 없다. ‘꿀사과, 꿀배’라는 푯말은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꿀사과나 꿀배를 먹어보지 않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간혹 당도가 표시된 박스를 볼 경우 소비자들은 상품성을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일 주산지 선과장의 당도기는 꺼져 있다.사과와 배 등 주요과일의 주산지마다 선과장이 가동되고 있다. 배 주산지인 나주, 울산, 천안, 안성, 평택 등에는 국내에선 비교적 큰 규모의 선과시설이 있다. 사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경북을 비롯, 충북과 예산 등 지역별로 선과시설이 들어서 있다.이들 주산지 선과장 중에는 비파괴당도선별기를 갖추고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중량위주의 선과작업이 이루어질 뿐 라인 가동시 당도기의 스위치는 항상 내려져 있다.배의 경우 12브릭스, 사과와 단감은 14브릭스는 돼야 당도기준으로 특상품에 속한다. 그러나 이같은 조건을 통과할 수 있는 과일은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 만약 수확기에 비가 자주 내렸거나 일조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당도기준은 더욱 의미가 없어진다. 따라서 비파괴당도기의 가동 필요성을 선과장 관계자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국내 판매용보다 엄격한 상품성 기준이 적용되는 수출용 배의 선과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크기별로 구분, 포장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당도에 따른 선별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수출용 배 선과장 중에는 당도기가 설치되지 않은 곳도 상당수에 이를 정도로 우리나라 과수주산지의 ‘당도감각’은 무디다.이처럼 소비자들은 꿀배와 꿀사과를 찾고 있지만 생산자들은 이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구입한 과일이 맛이 없을 경우 “속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특히 추석 이전에 수확된 배를 구입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물배’ 맛에 실망한다.박스 디자인은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눈길을 끌 수 있을 만큼 그 수준이 세련돼 있다. 그러나 같은 상자에 담긴 과일일지라도 맛은 제각각이다. 소비자들은 맛있는 과일을 먹고 싶지만 눈으로 짐작, 고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이제 국내 과일시장이 ‘국산전용’이던 시대는 지났다. 색택 등 겉모양만 좋은 상품으로 수입과일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비자들은 과일의 건강기능성까지 따져가며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다.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선 당도에 따른 선별, 출하가 필수적인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과수농가들의 최대목표는 대과생산에 맞춰져 왔다. 지금까지 ‘당도농사’는 기후에 의지하는 경향이 컸다.이같은 관행 때문에 고당도 과일을 선별, 출하하고 싶어도 물량확보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렇다면 선과장의 당도기를 돌리는 작업은 밭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과수농가들은 당도향상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이를 규모화할 수 있도록 공동출하 시스템을 적극 이용하는 방향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지금과 같이 개별출하 방식을 고수한다면 당도기준을 적용, 상품성을 차별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별출하의 경우 선별기준이 농가별로 차이가 커 자격미달 특품이 나올 수밖에 없고 소비자들은 과일을 살 때마다 실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생산된 과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이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규격화된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길 밖에 없다.우리나라에서 당도기준을 적용, 상품을 출하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구축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제주감귤을 꼽을 수 있다. 제주감귤농협이 생산하고 있는 ‘불로초’와 민간업체 브랜드인 ‘통통’이 성공적 모델이다.제주감귤농협 조합원 중 불로초 재배농가들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혈분성분이 강화된 유기질비료 위주의 시비체계를 감귤원에 적용하고 있다. 또 초생재배를 통해 토양의 질소질을 빼는 한편 과감한 간벌로 충분한 채광량을 확보, 당도를 높이고 있다. 불로초의 수취가는 일반감귤 대비 최고 3.5배에 이른다. 전량 공동선별에 의해 상품화됨으로써 품질규격화 뿐만 아니라 출하량의 규모화를 이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교섭력이 강화되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성공했다.주로 과수전문농협들이 가동하고 있는 산지 대형선과장의 품질기준도 강화돼야 한다. 값비싼 비파괴당도선별기를 들여 놓고도 ‘장식용’ 취급을 해선 곤란하다. 대부분의 선과장은 사실상 품질분류 기준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선과기 양쪽에 수십명씩 배치된 일용직 작업자들은 크기에 따라 분류된 과일을 박스에 담기 바쁘다. 선과장 책임자들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과일의 품질관리가 아니라 납품농가가 뒤바뀌지 않도록 체크하는 일이다.물론 당분간은 현재의 선과방식으로도 기존의